알파코리아

알파의 고친다 지도 수용의지 진단

munje 2008. 7. 24. 22:42

 

 

알파의 고친다 지도 수용의지 진단

이분법 본질과 전도 프로그램 분리는 생존전략


 

 큰 사진 보기


결론적으로 말하면, 알파가 벼랑 끝에 위기를 맞아, 비성경적인 지적을 수용하여 고친다는 것은, 근본 성경본질을 이탈한 알파의 DNA 인자에 따른 형상과 모양에 성경적인 너울을 만들어 씌우는 것으로, 마치 겉 외형만을 수술하는 성형에 불가한 것이다.

본질에 변화가 없는 교리와 전도분리와 오해라는 이분법 에 언어 표현과 언론에 빌미를 주는 알파코스 심포지엄에 행사는“전도 프로그램으로 유효한 것으로 인정”“은근 슬쩍 용인해주려는 암묵이 깔려”있고, 금년 9월 총회를 겨냥한 알파코스의 생존 전략에 일환일 뿐이다. 알파코스의 현실을 직시하건데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성도와 지도자들이 알 것은 이단시비논쟁에서는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따라서 시비의 과정에서 상호 만남으로서 알파의 오너들이나 추종자들의 말이나, 그들의 인품이나 알파적용의 결과에 공감하거나, 이들과의 정이나 의리라는 인간의 관계가 진리에 우선은 금물이다.

따라서 이들이 고치면 된다는 식이나,
“우리 신학과 맞지 않다고 하면,
문제를 지적하고 맞게 고쳐서
사용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옳다,
알파는 불신자를 전도하고 교회에 접촉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전도에 최선을 다해왔고,
앞으로도 한국교회를 건강하게 섬기길 원한다”며
“지금까지의 비판들은‘알파코스’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없어 생긴 오해”
우리는 전도자로서 생명을 걸고 섬기고 있다며
“지적받는 부분들을 얼마든지 수정하겠다”

목회 프로그램 따로 있어서
전도 프로그램이기에 문제가 없는 냥,
성경교리와 실천신학을 이분법으로 분리하여
실천신학에서 그럴 수가 있다거나
이단성이 없다는 식에 현혹이 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불신자 전도를 위한 전도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성경적인 개혁신학의 벽을 넘나들 수가 없는 것이다
.

작금 알파코스의 신학검증의 결과 보고 세미나 공청회에 따라 알파코스가“이단이나”‘사용금지’서‘사용주의’냐를 놓고 고민하는 모습은 이해가 가나, 이미 신학검증의 결과 판단의 주사위는 던져져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재론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느냐, 사람을 기쁘게 하냐에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은 어두움의 영과의 대결구도로서 우려를 금할 수가 없는 것은, 알파코스가 문제가 있어서 연구한 결과에 이의제기 총회 보고에 영향을 미치는 행각으로 오판을 유도 진리에 반하는 유보적인 결과로 지켜보자는 식으로 예의 주시라면 큰 문제이다. 왜냐하면 총회의 순결성을 지키기는커녕, 훼손하는 해악을 끼치기 때문이다.

특히 알파코스의 장점은 살리고 잘못된 신학은 고치겠다는 접근은 이미 잘못되는 길을 접어 들어간 것이다. 이대위, 신학부와 총회는 알파측의 추종자들에 말인 앞으로 잘하고 고치겠다는 것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알파코스 문제제기 이전에 노출한 잘못된 것들이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는 검증의 결과에 따라,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보고만이 있는 것이다. 그 결과에 답은 나와 있는 것이다.

알파코스 적용에서 성경의 입장을 달리하는 전도 프로그램을 각 교단에 일부 도입한 교회가 많든 적든지, 교회당이 크든지 작든지, 목회자의 유무명이나 교단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유무에 상관하지 말고, 정확히 본 교단과 같은가?

다른가?에서, 그 연구의 결과가 다르다면, 검증의 비중에 따라 이단 또는 사용금지라는 말에 인색하거나 우물주물 하면서 눈치나 보아서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언어의 표현이나 태도를 보이지 말아야 한다.

사실 이단논쟁에서 늘 고민하는 과정이 있게 마련이지만, 이번에도 진리의식이 흐릿한 알파와 밀접한 이들의 간교한 임시미봉책이나 로비에 흔들려서, 교리와 실천신학을 이분법에 별개라면서 교리를 무력화를 시켜서 알파 전도 프로그램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임의로 선택을 한다면, 피 흘린 발자취로 말미암아 바른 신앙을 전승한 진리의 벽을 무너트리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알파의 전도 프로그램은 은사주의에 탈을 쓴 무리들을 방목하는 최악에 원년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에 동조하거나 직무를 유기한 이들은 자자손손 대대에 불명예는 물론 하나님의 책망을 면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알파코스는 교리적으로나 실천신학적인 전도 프로그램에서 적용하는 것들이 각 교단이 이단 사이비로서 사용이 금지가 결정된 것을 적용했다는 점과 한국에서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이제 와서 급제동리 걸리니까 비로소 안한다, 고치겠다니 이는 어두움의 영에 사로잡힌 자들에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알파코스의 주말성령수양회는 영국성공회의 니키 검블로부터 사상은 발전하여 지금까지 체계화 되었을 뿐, 변함이 없이 집요하게 진화된 모습이 현재임을 알아야 한다.
영국성공회 알파코스 이후 지금까지 그들을 향한 국내외의 비판적인 정문일침에 알파본부에서 그 본질을 고친 것이 아니라,

이들은 끊임없이 상황대응의 변색으로 생존전략을 펴서 세계적인 분위기를 형성한 것으로 가장 우수한 프로그램으로서 말세에 추수꾼으로 자처하는 바, 우월적인 자존감은 비판에 대하여 뭐는 짖어라 열차는 간다는 속심을 생각하여 보았는가?

이들은 이번에 심포지엄이 한국교회를 섬기기 위한 것이라지만 알파코스의 프로그램 생존을 위한 것일 뿐임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이번 심포지엄의 발제자 구성원에서, 알파 추종자와 이를 적극 지도를 해서 고쳤다는 식에 사람들이나, 이를 교묘히 비호하려는 한기총 이대위의 움직임을 경계해야 한다.
어찌 알파가 헌의가 되기까지 피해 사례가 심각한 당사자나, 알파를 끊임없이 비판한 이들을 초청하지 않는지, 이는 속 보이는 행각이 아닌가?

사실 이번 심포지엄에 합동과 합신이 침여한 것은 불명예라는 지적이 이구동성이다. 한기총 이대위와 입이나 맞추도록 하지, 이미 합동과 합신은 신학검증 연구의 결과가 공청회와 세미나를 통해서 공표한 이상에 알파측은 자기들의 입장을 공표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알파의 심포지엄에 참여로 반복되는 비판 선언에 불과한 것일 뿐, 그 결과는 알파 심포지엄에 힘을 실어 주는 전략에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물론 알파가 듣든지 아니 듣는지 선지자의 기능을 알파의 공식적으로 자리에서 수행을 했다는 점은 있으나, 이는 이빨 빠진 종이 호랑이에 외침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정통기독교의 연구한 비판인 정문일침에 알파가 수용할 의지가 있다면, 자기 입 맛대로 구성원을 만든 전시성의 심포지엄이 아니라, 객관성이 있는 구성원으로 개최를 했어야 할 것이다.

이단연구에 경험에 의하면 이단사이비논쟁에 대상들이 벼랑 끝에 위기에서 중단선언, 각서, 사과문, 지적하면 즉각 고치겠습니다. 한국교회와 함께 가기를 원하며 겸손히 섬기겠습니다, 라지만, 이들이 돌이킨 것을 볼 수가 없고, 결국은 시간 속에 변색만이 시도가 되고, 끊임이 없는 로비로 시간을 낭비, 결과는 소 잃고 외양간이나 고치는 격이나, 사후 약방문이나, 뒤통수 얻어 맞은 결과나 다를 바가 없음을 모르는가?

물론 사건의 진행 속에 재미를 보든 아니보든지 간에 오해를 받음이 일반이다. 비공개성 밥 한 그릇이라도 교통비나 사례비라도 때 안 묻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 아닌가? 사실 이단출현을 성경의 예언대로 믿는 이라면 어찌 다 그 정체가 들어난 알파코스의 본질에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믿는다.

근본 성령론이 잘 못된 이단은 구원론이나 은사론 행위들이 성경에 참 예수님과 성령님의 역사가 아닌 불법의 행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사용하는 전도 프로그램은 불신자 전도는 명분일 뿐이지, 바른 그리스도의 구속 교리의 믿음은 물가능하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타난 성령님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는 것은 마태목음7:22.23에 주의 이름으로 주여 주여하는 자들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성령론이 잘 못된 것은 곧 성경의 바른 이해 탈선으로 성경교리인 진리의 체계를 이탈한 이단이다.

이럼에도 알파코스가 교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이해를 한다면 그는 연구하지 않았거나 비호자라는 굴레를 벗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수준에서 알파코스의 고치기 지도를 운운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1. 알파코스의 목적은 불신자 전도 프로그램 실천이다. 그러나 성령론이 잘 못된 전도 프로그램으로서 그럴싸하나, 구속 교리의 전달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양태론 이단이기 때문이다. 그 증거는「인생의 의문점들」니키 검블 저, p.127. <성령은‘예수님의 또 다른 자기’이다.>p.128 <“성령은 예수님과 똑 같은 것이다.>.

2. 알파코스는 인간의 요구 신의 존재증명 입증을 위하여 가시적인 증거를 보여 주는 것이 주말성령수양회를 실시한다. 이는 불신자의 구원의 확증을 체험케 하기 위한 역사를 보여주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성령님을 끌어내리는 것으로 우지좌지하는 절대주권을 침해하는 인본주의 프로그램이다.

3. 알파코스의 주된 목표는 초월적인 신비를 체험케 하는 경험주의이다. 따라서 알파코스는 능력과 치유를 전도의 수단에서 분리할 수 없는 것은 그 목적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신비주의 경험 위주를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고로 이같은 것을 안 한다는 것은 감언이설이고, 이미 속이거나 속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4. 알파코스의 조직과 그 배경에 인물들은 오순절 은사주의자, 예수회나 프리메이즘에 관계한 거물들이 포진하고 있다.

5. 알파의 니키 검블은 존 윔버 빈야드 운동과 능력전도 치유, 신사도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빈야드와 그 유사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이것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파의 꽃인 신비체험을 잘라 버리는 것으로 신의 존재증명을 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는 알파의 전도의 열매를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다.

6. 알파코스는 각 교단의 벽과 교리인 진리의 분계선을 넘나들게 하는 철학사상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이나, 이단이나, 개신교나, 모두 후리 패스하는 전도 상품인 것이다. 사실 이것을 만들어서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것이다. 성경신학을 이탈한 전도 프로그램의 존재 가치는 없다.

7. 알파코스 운동은 에큐메니즘으로 가는 도구로서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 증거로는 예장합동, 고신, 합신은 알파코스 전도 프로그램의 적용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심각한 결론에 이르는데, 에규메니즘을 지향하는 통합측은 문제를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기독교는 무슨 프로그램이나 운동들로 복음 전파가 중심이 된 적이 없다. 다만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오래전부터 밀려오는 각가지 프로그램들로 몸살을 앓고 있음이 현실이다. 이 모든 것이 복음을 전한다는 명분은 가지고 있으나, 체험위주의 신비주의 실제로서 복음을 비성경적으로 희석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복음이 본질로서 주체가 아니라, 비성경적인 본질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주체가 되는 프로그램의 원천과 사역의 과정을 잘 살펴보면, 그들의 목적이 교회를 본질에서 이탈케 하는 것에 동질화하려는 의도성이 엿보일 뿐 아니라,

결국 교회들을 세속화하고 은사 신비주의와 종교다원주의에 익숙하게 하여서 로마가톨릭에 친화적으로 휘말리게 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성경을 이탈한 어떠한 프로그램의 목적이 성경의 본질을 변케하는데 주객이 전도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본질에 모든 프로그램은 종이 되어서 본질이 아니면 배설물 같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에 미련을 두고, 이것이 잡초나 가라지의 성장임을 깨닫지 못하고, 그 효율성과 결과만을 가지고, 이에 관계를 끊지 못하고 끈적거리는 것이야말로 진리의식이 흐릿한 사람임을 스스로 보이는 것이다.

8. 알파코스가 전도를 강조하는 전도 프로그램으로 영혼구원을 아주 중요시 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목사를 추종하는 성도를 많이 만들어서 당회를 해채하거나 무력화를 시키고, 직접 공동의회의 투표율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들이 또한 있음이 현실이다.

9. 알파코리아 알파코스는 니키 검블의 조직에 일부로서, 그 본부가 가지는 철학적인 사상에 근본 이탈은 불가능 한 것이다.

작금 한국에서 알파는 현실적인 비판의 문제가 벽에 부딪쳐서 이를 타개하는 상황대응에 변색은 가능하나, 이는 사실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다. 왜냐하면 알파 본부의 철학 사상에 결정적인 변화를 준다면 몰라도 그것이 아닌 알파코리아의 임의선택에 포기나 수정행위는 오리지날의 알파가 되기를 포기한 돌연변이 알파가 되기 때문이다.

10. 요즈음 알파가 벼랑 끝에 위기를 맞아서 알파의 비성경적인 지적을 수용하여 지도를 받아 고친다는 것은 근본 알파의 DNA 인자에 따른 형상과 모양에 서 성경적인 것으로 마치 겉 외형만을 수술하는 성형에 불가한 것이다.
이러한 임시 행위에 속거나 속이지 말아야 한다.

성경에 조명된 결과는 알파의 속은 이리요, 겉은 양의 탈을 쓴 것이다.
이들은 성령의 운동과 유사한 은사신비주의를 행하여 믿음 이전에 체험(경험)을 우선하는 義의 일군으로 자처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행각을 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 우려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기독교이단대책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