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중앙침례교회 윤석전

윤석전씨 죄와 마귀의 사망 이단성

munje 2006. 5. 21. 19:56

 

윤석전씨 죄와 마귀의 사망 이단성

죄의 혈통 유전과 마귀와 죄 사망에 따른 영생은 어불성설


 


부활의승리 고전 15:12~19 주일밤예배 인터넷 설교 2006-4-7


연세중앙침례교회 윤석전목사는 2006.04.07. 인터넷 설교에서 이단성을 설파 했다.
그가 택한 성경본문은 고전 15:12~19에「부활의 승리」에서, 그의 메시지 죄와 마귀의 사망설파는 아래와 같다.

【...바로 그를 이 땅에 보내셨으니
요한복음14:16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마귀는 뱀을 상징함이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님이 바로 죽으신 것은
우리가 볼 때는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확실히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은 내용 속에는
죄가 죽었고
우리를 끝없이 멸망시키려는
바로 뱀의 마귀의 상징인 마귀가 죽었고
아멘 합시다.
그의 흘리신 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니
그래서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다....】
.


위 윤석전씨의 메시지가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싸하게 참 말인 것 같으나
따져보면 무지와 오해의 시작에서 비롯된 표리부동한 이단성에 연루한 메시지라는 것이다.
이단은 어떤 명제에 따른 전제와 결론에서 전제가 틀리거나 맞게 아니면 결론을 맞게 틀리게 말하므로 듣는 이의 판단을 혼란케 함이 일반이다. 이는 기만성 언어 짜깁기 기교 수법으로서 진실한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바, 아래서 살펴보기로 한다.


1. 요한복음3:14 탈적용 해석이다.

위 인용문(2006.04.07) 요한복음14:16에는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는 것은 없다.
이를 확인하여 본 결과 성경의 장과 절이 틀린 것이다.

이 내용은 ▲ 요한복음3:14로서“모세가 광야(曠野)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人子)도 들려야 하리니,”
“And as Moses lifted up the serpent in the wilderness, even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
“kai; kaqw;" Mwsh'" u{ywsen to;n o[fin ejn th'/ ejrhvmw/, ou{tw" uJywqh'nai dei' to;n uiJo;n tou' ajnqrwvpou:“

위 요한복음3:14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예표한다.
따라서 장대는 십자가를, 놋 뱀은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이다.

그 증거는 민21:9“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And Moses made a serpent of brass, and put it upon a pole, and it came to pass, that if a serpent had bitten any man, when he beheld the serpent of brass, he lived.
vj;N:h' &v'n:A!ai hy:h;w] sNeh'Al[' Whmeciy]w" tv,jon] vj'n] hv,mo c['Y"w".yj;w: tv,joN]h' vj'n]Ala, fyBihiw] vyaiAta

이는 우리 죄에 대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기 위하여 세상의 죄를 담당하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므로 다 이루신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말씀에서 죄와 마귀가 죽었다는 사망설인 해괴한 주장이나 적용은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죄 사망이나 마귀사망을 언급한 사실이 없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은 예언의 성취로서 예수님을 예표하는 모형이 실상으로 나타나신 사건을 내용적으로나 영적으로라는 식으로 성경에 근거가 없는 내용을 더하여 왜곡할 수 없는 예언의 말씀이 성취된 문장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에 모형적인 해석이 가능한 예언의 문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2. 血統的 죄의 유전을 주장한다.

윤석전씨가 주장하는 죄는 혈통적 유전으로 통일교나 전도관 등이 주장하는 그 맥락이다.
그 증거는 【“그러나 죄송합니다. 이 원죄는 아담부터 인간의 피의 혈통을 타고 흘러 내려오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라고 했다.(『윤석전을 왜 이단이라 하는가 ?』pp.108-109.『광야의 외치는 소리』박용규 著. 은파선교출판사. 1996. p.299.) 사실 윤석전씨는 과거 /1989/1990/1996 뿐 아니라, 작금 2006.04.07. 설파한 사상을 비교하건데, 다르지 않은 이단성의 메시지를 소유한 자로서 변함이 없음이 재확인이 되는 것이다.

【“마귀 모르면 예수 몰라요...”】 (1990.5.10)
【“인간을 구원하려고만 하나님이 오셨다면 하나님은 무능한 분이며 마귀와 줄다리기 하고 싸우고 계신 하나님은 인간을, 마귀를 멸하는 일에 도구로 쓰시고 아버지께로 가며 찬송 부르는게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라 마귀의 불의를 들어내는 것이 영광이며 마귀를 멸하는 것이 영광이라”“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영적으로 보면 예수가 아니라 마귀다”】
라고 1989년과 1996년에도 똑같은 주장을 했다.(교회와 신앙 2000. 3월호 p.140.)

그는 1998.01.30. 평택집회에서 동일선상에 메시지를 설파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은 마귀 때문에 구원을 받았는가?

예수님이 초림하신 목적이 마귀의 불의를 들어내고 멸하는 것이라지만 마귀는 피조물인데(요1:2-3; 골1:16-17; 겔28:13-17; 사14:12-14; 계12:9) 하나님께서 마귀와 줄다리기나 하고 싸우고 계신다는 폄하 모독발언 뿐 아니라, 마귀를 멸하는 도구로 쓰셨다는 것은 성경을 이탈한 망언이다.

이것은 죄론, 마귀론, 창조론, 초림 목적과 신론 관련이 근본을 이탈한 십자가의 구속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3. 마귀의 사망은 거짓이다.

윤석전씨는 말하기를 2006.04.07. 메시지는 1998.01.30.평택집회 설교테잎 №22. B면에서,

【“예수님 이 죄가 있어요 없어요(없어요) 예수님이 죄가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근데 예수님을 누가 죽였어요?
(마귀가) 다같이 마귀가 (마귀가) …
겉으로는 대제사장 서기관, …
장로들 유대인들 바리새인들이 죽인 것 같지만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마귀가 죽였고
그는 도구로 사용 당하고 말았다 이 말입니다.”】
에 근거한다.

위 설파에서 윤석전씨는 일관성이 없는 성경을 이탈한 정체성을 들어낸다.
이것이 이단들의 속성 가운데 양의 옷으로 위장하는 노략질하는 이리의 행태라는 것이다.
어떻게 표리부동한가?
윤석전씨는 십자가에서 마귀가 예수님을 죽였다는 것이다.
반면에 내용적으로는 마귀가 죽었다고 한다.

이렇다면 십자가의 사건에서 예수님을 마귀가 죽이고, 동시에 내용적으로 마귀가 죽었다는 것이니, 이는 마귀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마귀는 죄를 담당할 몸인 육체가 없고, 십자가에 달린 증거가 없고, 피를 흘린 증거가 없다.

그가 말하는 내용적으로나 영적으로 마귀가 죽은 것이라는 윤석전씨의 주장은 신성기만 모독하는 적용이다.
십자가의 사건에서 마귀의 사망설파는 신종 거짓이다.

그렇다면 2000년 전 십자가의 사건 이후에는 마귀의 역사가 없다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마귀의 실존체가 죽어 사망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 것은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마귀나 죄가 죽거나 죽이셨다는 것이 없다. 예수님은 세상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다.

구약의 제사에 따른 제물은 흠과 티가 없는 것은 속죄의 어린양이 되시는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인 속죄를 위한 성별된 짐승이 죽임을 당해서 하나님께 향기로운 드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죽임을 당할 때에 마귀가 죽었다는 그 어떠한 언급이 없을 뿐 아니라, 마귀가 십자가에서 영적으로 죽임을 당했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겠는가? 어불성설이다. 마귀는 성별된 짐승이 아니다.

한편 그의 말대로라면 마귀를 대적하라는 것이나 세세토록 고초를 당하는 성경을 거짓이 되게 할 뿐 아니라, 영적으로 십자가에서 마귀가 죽었으니 마귀가 구세주가 되는 것으로 자칭 마귀를 구세주로 재림주로 만드는 해괴한 망언인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그의 말대로 마귀가 죽었는데,‘우리를 끝없이 멸망시키려는’마귀의 행태와 전쟁을 선포함이 말이 되지 않는다.

윤석전씨의 설파대로 죄와 마귀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면 죄와 마귀나 혈통적인 유전이 해결이 되어 거론할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이 땅에는 죄와 마귀가 아예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윤석전씨는 끊임없는 죄와 마귀와의 싸움을 뇌까리는 것은 기만이다.

사실 윤석전씨의 마귀의 사망설파는 베뢰아의 지론이다.
이는 예수님이 마귀를 박멸하러 오셨다는데 근거한 것이다.
이런 주장은 1요3:8을 잘 못 이해한 것에 기인하는 무지의 결과이다.

예수님의 초림은 마귀의 실존 자체를 멸하거나 죄가 가시적인 존재를 인정한 사망으로서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세상 죄를 담당하시는 것은 우리 죄에 대하여 사하시는 속죄로서 이를 믿는 자에게(요3:16, 행4:12)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는 조건으로 죄를 없이 하신 것을 죽은 것인 죽은 자로서 하나님에 대하여 산자로 여기는 것이지(롬6:11) 십자가상에서 마치 가시적인 죄가 실존체로서 생명이 있어서 죽었다는 죄의 사망이 아니다.

▲ 롬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 Likewise reckon ye also yourselves to be dead indeed unto sin, but alive unto God 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ou{tw" kai; uJmei'" logivzesqe eJautou;" nekrou;" me;n ei\nai th'/ aJmartiva/, zw'nta"< de; tw'/ qew'/, ejn cristw'/ jIhsou' tw/'< kurivw/< hJmw'n.”

사실 마귀의 사망은 베뢰아 이단의 지론이다.
그 근거는 1요3:8에 오류 해석에 기인한다.

▲ 1요3:8의 말씀인“죄(罪)를 짓는 자(者)는 마귀(魔鬼)에게 속(屬)하나니 마귀(魔鬼)는 처음부터 범죄(犯罪)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魔鬼)의 일을 멸(滅) 하려 하심이니라”
“He that committeth sin is of the devil; for the devil sinneth from the beginning. For this purpose the Son of God was manifested, that he might destroy the works of the devil.”
“oJ poiw'n th;n aJmartivan, ejk tou' diabovlou ejstivn: o{ti ajp j ajrch'" oJ diavbolo" aJmartavnei. eij" tou'to ejfanerwvqh oJ uiJo;" tou' qeou', i{na luvsh/ ta; e[rga tou' diabovlou.”

여기에서 마귀의 일을 멸한다는 것은 마귀의 실존을 박멸하여 죽였다는 사망을 뜻하지 않는다.
마귀의 <일>은 <엘곤>으로서 행사, 행동, 행하거나 행해진 어떤 것, 과업, 임무, 성취한 일, 행한 일이다.
<멸하려>하심은 <루오>로서 풀어 주다, 깨뜨리다, 파괴하다, 풀다, 놓아주다, 해방하다, 짓부수다, 끝장내다, 없애버리다, 폐지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미혹이나 범죄를 하게 하는 것으로서 예수님은 이를 깨뜨려 파괴 하여 끝장을 내어 인간을 죄에서 풀어서 해방을 시키기 위하여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으로 언급한 바, 자기 백성을 저희의 죄에서 구원할 자로서 사명 완수를 뜻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귀의 실존을 죽여서 멸함이 아니라,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초림을 하신 것이다. 결코 마귀의 존재 자체를 죽이거나 멸하거나 죄의 사망을 위하여 초림하신 것이 아니다.

사실 마귀를 멸하거나 박멸하는 특권에 권세를 성도에게 주신 바가 없다.
다만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면 피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약4:7,벧전5:9).

마귀를 멸하는 밤 낮 세세토록 괴로움을 받는 형벌적인 심판의 종말은 계시록20:10이지 2000년 전 초림이 아니다. 이는 7년 대 환란 이후가(계20:10) 되는 것이다.

이때에 영원한 불 못에 던지 움을 받아 고초 가운에 거하는 것을 멸함을 받는 것으로 지옥에 풀어서 놓아 주는 것을 가리킴이다.

요한계시록 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And the devil that deceived them was cast into the lake of fire and brimstone, where the beast and the false prophet [are], and shall be tormented day and night for ever and ever.”
“kai; oJ diavbolo" oJ planw'n aujtou;" ejblhvqh eij" th;n livmnhn tou' puro;" kai; qeivou, o{pou to; qhrivon kai; oJ yeudoprofhvth": kai; basanisqhvsontai hJmevra" kai; nukto;" eij" tou;" aijw'na" tw'n aijwvnwn.”


4. 죄의 사망은 기만이다.

예수님은 만세전에 예정을 따라 화목제물로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셨다.
그가 초림을 하신 것은 세상의 죄를 담당하시는 예정대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기 위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義에 대하여 살게 하려하심이다.

▲ 벧전2: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Who his own self bare our sins in his own body on the tree, that we, being dead to sins, should live unto righteousness: by whose stripes ye were healed.”
“o}" ta;" aJmartiva"< hJmw'n aujto;" ajnhvnegken ejn tw'/< swvmati< aujtou' ejpi; to; xuvlon, i{na tai'"< aJmartivai" ajpogenovmenoi, th'/ dikaiosuvnh/ zhvswmen: ou|< tw'/< mwvlwpi< aujtou ijavqhte.”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
이는 죄가 생명이 있는 실존체로서 인정되는 죄의 사망이 아니라,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여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시려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사실 죄의 본질은 불신앙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죄가 실존적인 가시적 생명이 있는 유형으로서 사망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윤석전씨의 설파와 같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이 죄가 죽고 마귀가 죽었다면서 이것을 영적인 의미라는 적용 자체가 근본을 이탈한 해석이다.

왜냐하면 죄가 죽어 사망을 했다면 죄는 이 땅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죄의 결과들이 존재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죄가 인간과 더불어 존재함이 인정되고, 종말이 죄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이 죄들은 마귀의 개입이라는 개연성을 생각하게 된다.


5. 놋 뱀의 왜곡 적용과 양태론에 따른 영생은 없다.

위 메시지를 살피건대 윤석전씨는 놋 뱀 사건에서 엉터리 죄와 마귀의 사망을 주장한다. 한편 그는 이단으로 규정을 받는 양태론을 주장하는 자이다.

이 지경에 그가 영생에 대하여.

【... 그의 흘리신 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니
그래서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다. 】
라고 열정적으로 소리친다.

어떤 이들은 이단의 메시지가 다 맞아서 이상이 없는 것이라는 무분별한 주장을 하면서 이단의 비판에 대하여 반감을 표시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무엇이 틀렸는지 의문을 제기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표리부동한 속과 겉도 모르는 자요
양의 옷인 겉만 보고 이미 기만을 당한 것이다.

사실 윤석전씨가 강력하게 진액을 짜듯이 설파한 구원과 인자는 성경에 합당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부 = 성자 = 성령이라는 양태론에 따른 인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태론 인자는 십자가에 달리시거나 피를 흘리신 바가 없을 뿐 아니라,
이를 믿어서는 구원이 없는 것이다.

이단의 메시지를 변별함에 알 것은 문장이나 언어의 흐름에서 일관성이 없이 거짓과 참을 공존시키므로 듣거나 보는 이들의 지각이나 이성을 혼미케 하여 무분별하게 한다.

사실인즉 이단의 메시지는 부분적으로는 참을 말하는 것 같으나, 이것에 거짓이 혼합되어 전체적인 흐름의 의도가 거짓으로 기만하기 때문에 전체가 거짓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단은 노략질하는 이리가 본래 정체이다.

따라서 양의 옷을 입을 수밖에 없는바 이 옷도 거짓을 위장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의도한 것일 뿐인 고로 전체 흐름에서는 참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마치 사기꾼이 말하는 진실한 것으로 여겨지는 일면이 사기를 치기 위한 기만 전략에 수단인 고로 전체가 거짓이라는 점에서 교훈을 삼아, 이단이나 사이비들의 소리에 귀가 앏아서 아멘을 쏟아 내거나 믿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이단사이비연구대책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