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코리아

예장합동 신학부 알파코스·G12 공청회

munje 2008. 5. 23. 17:55

 

예장합동 신학부 알파코스·G12 공청회

알파 전도프로그램 탈목회·교회성장 미끼 비성경 경계령


 

 
예장합동이 2007년도“교단 총회에 헌의된 알파고스의 이단성 조사에 대한 연구가 92회기 총회 상비부인 신학부”제1소위에 수임한 연구결과 발표를 2008/05/22/(목) 총회회관 2층 전국여전회연합회관에서 개최하다. 1부 예배 10:30에 신학부장 김동관 목사의 사회로 신앙고백, 502장(빛의 사자들이여), 신학부 서기 이우동 목사, 설교 석병규 목사(1요4:1 분별의 중요성), 광고(총회본부 교육국장 황윤수 목사), 설교자의 축도로 11:00에 마치고,

2부 공청회가 신학부 제1소위원장 송태근 목사의 진행으로 11:00 총회본부 총무 이치우 목사의 시작기도로 -15:00에 마치었다.

이 날 공청회 프로그램에 따른 시간배당은 발제자에게 40분, 논평 20분.

▲ 11:00-12:00 “개혁주의 입장에서 본 G12”총신대 김광열 교수(논평 : 총신신대원 이상원 교수)
▲ 12:00-13:00 점심식사/ 13:00-13:40에 “개혁주의 성령론의 입장에서 본 알파”총신신대원 문병호 교수(논평 : 칼빈대 신대원 오성종 교수)
▲ 14:00-14:40 “개혁주의 성경론과 구원론의 입장에서 본 알파”총신신대원 서창원 교수(논평 : 칼빈대신대원 박혜근 교수)
공청회는 15:00에 신학부 회계 전인식 목사의 광고와 더불어 친교 폐회
.

이 날 공청회야말로 한국교회를 바른 신앙으로 인도하는 비판과 교회의 성도 보호를 위한 단호한 경계령의 선포였다. 본지는 아래와 같이 독자의 유익한 정보 공유를 위하여 비판 발제문의 일부를 인용한 것임을 밝힌다<편집자 주>.


1. 김광열 조직신학 교수는.

(시작하는 말, 역사적인 개관<제3의 물결/셀교회 운동-G12시스템>, G12성령운동<“제3의 물결”성령운동 /“신사도적 교회”의 신학/ “사도적”예언사역>, 평가, 맺는 말)로서,“우리는 또한 G12 성령운동이 내포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들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운동의 문제점은-이미 앞에서도 살펴 보았듯이- 오늘날도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와 예언(사도적 차원에서의)이 있다고 보는 주장이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예언이나 계시란 전통적인 의미에서 단순히 신자가 경험하는 성령의 감화나 조명의 역사 차원의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사와 능력을 받았다는, 21세기의 ”신사도“ 혹은 ”제2의 사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직통으로 받는 계시“를 의미한다.

그러면 과연 이러한 가르침은 개혁신학의 입장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끝으로 이러한 성령운동은 성령세례를 제2의 축복으로 말하지 않으며, 방언도 성령세례의 표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제3의 물결 운동의 성격을 따른다고 하면서, 오순절이나 은사운동과의 차별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 대신 표적과 기사를 강조하고 예언적 음성과 계시적 말씀을 강조함으로서 여전히 신자들을 2종류의 신자들로 구분하여 2등급화 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결국 모든 신자들이 그러한 성령의 역사들을 경험해야만 한다는 비성경적인 압력을 가하는 동일한 오류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결국 교회성장이 오늘날 시대적 과제임에도 틀림이 없으나, 무조건 성장만을 위한 성장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성경이 제시하는 개혁신학 관점을 견지하면서 추진하는 것이 본 교단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라고 사료가 된다”.


2. 조직신학 문병호 교수는.

“개혁주의 성령론의 관점에서”(두 가지 문제점, 탈(脫)신학적, 그리하여서 비(非) 신학적인 프로그램, 현상의 복음, 성령론의 형성 : 두 가지 가르침, 개혁주의 성령론: 중보자 그리스도의 계속적 중보, 결론 : 오직 진리의 떠 위에서) 문 교수는“알파코스에 관한 책들을 일별하고 그 살상을 접한 후 여러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들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알파코스는 탈 신학적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신학적이고자 하는 듯하나 전혀 신학적이지 않다. 그것은 성경적인 가르침의 종합화, 체계화로서의 신학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 결국 비산학적이다.

둘째로 알파코스는 복음으로부터 현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으로부터 복음을 도출해 내고자 한다는 사실이다. 현상이 복음의 진리를 압도한다. 복음의 능력을 모종의 현상에 대한 체험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 전자는 과연 알파코스가 신학적 진리에 기초하고 있는가의 본질적 문제이며, 후자는 그것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당위의 문제 혹은 열매의 문제라고 할 것이다.

필자에게 주어진 논제는 대체로 후자에 관련되어 있는 듯 하다. ...이런 프로그램의 경우 가장 큰 문제점은 신학적으로 진리를 추구하는듯 하나 실제적으로 지극히 비진리에 속한 현상을 추구하는데 있기 때문이다...알파코스는 구원의 계시 자체보다 복음의 현상을 복음으로 추구한다...한때는 팜플렛을 돌려서 사람을 모아서 못 그칠 정도로 웃기고 넘어가게 하더니, 이제는 성도된 표로 이발이 금으로 변하는 기적을 베풀어 진다고 한다,다른 복음은 이러하다 : 교인은 코스로 만들어진다: 그 표는 금이빨이다.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오직 믿음으로 단번에 구원을, 그 표는 세례가 아닌가?...성령은 ...인격이시다...어린이들의 수준에 맞게 정의한다면, 성령은 ‘예수님의 또 다른 자기’이다. 그분은 어떤 분인가?...달리 말하면 성령은 예수님과 똑 같다는 것이다...이는 삼위일체에 대한 근본인식이 결여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분 하나님으로서 동등하시고 동일하심에 대한 이론(異論)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과 같다고 하거나 또 다른 예수님이라고 부르면 양태론적 이해에 이르기 쉽다.
결국 이렇게 이해하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단지 현상적 일치만이 남는다. 이것은 성경의 본질에 가장 어긋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알파코스의 성령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성령과 성자는 동일하다. 성령은 사람과 같은 인격이다. 그러므로 성자도 사람과 같은 인격이다.

그 결론이 이러하다면 이제 성자에 관한 모든 기사는 성령의 현상으로 대체될 뿐이다
. 이것이 어린이들의 수준에 맞춘 가르침인가? 어린이들의 수준은 비진리를 수용하는 정도인가?...피터 와그너와 존 윔버 등에 위해서 전개된 제3의 물결은 신학적인 문제보다 은사 현상 자체에 더욱 집중했다. 오직 성령의 채워짐들(fillings)을 통한 능력 사역들(empowerings)에만 매달렸다. 이들은 성도의 회심을 모두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보았다. 이러함을 단지 전도에 실용적이기 때문이었다.

알파코스의 성령론은 이러한 제3의 물결을 계승하고 있다.
다만 성령의 날 이전에 코스가 조금 더 정교할 뿐이다. ..알파코스의 가르침은 단지 자의적이고 그 현상을 무익하다. 무익할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마땅히 얻게 될 참 기쁨을 오히려 가로 막는다...알파코스는 성령이 그리스도와 같다고 말하면서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대체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없고 성령만 남았다. 이제 성령이 인칠 진리가 없으니 현상에만 매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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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창원 교수(삼양교회)는.

“개혁주위 입장에서 본 알파 코스의 성경관과 구원론”(개혁주의 성경관에서 본 알파코스, 개혁주의 구원론 입장에서 본 알파의 구원론) “나는 알파코스 본부에 연락하여 그곳에서 발행한 책자를 다 받아서 섭렵하였다. 그리고 알파코스에 대한 비평적인 글들 및 동조적인 글들을 함께 읽고서 발제자로서 그리고 개혁교회의 한 목회자로서 평가하고자 노력했다. ..,

‘참여하는 교회들이나 성도의 숫자가 많으면 뭔가 있는 것이 아니냐? 라는 교회성장의 실용주의 논리에는 언제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성장에 사활을 건 목회자들은 크고 작은 편치에는 관심이 없고 단 한방에 승부를 걸 고자 하기 때문에 몇몇 부작용보다는 일단 성공이라는 미끼에 영혼을 내어 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개괄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전도 프로그램이라는 차원에서만 말한다면 알파코스는 개혁주의 신학적 입장을 떠나서라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교회의 중심 자라에 있어야 할 올 바른 신학적 교훈(교리 들이 변두리로 밀려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핵심을 차지하게 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

니키의 성경해석도 개혁주의 성경해석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는 ‘지식의 말씀’을 해석할 때 병 고침의 은사로 귀결을 짓은 이상한 해석을 하고 있다. 소위 연민의 고통(sympathy pain), 즉 자기 것이 아닌 고통을 몸에 느끼는 것을 지식의 말씀이라고 보면서, 하나님께서 누구를 위해 기도하기를 원하시는지를 가르쳐 보여주는 수단으로 말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오순절 교회들이 오랫동안 이단사상에 휘말린 가르침 중 하나에 속한 것이다.

좀 더 치우치면 예수의 이름을 빙자한 무속신앙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이것은 자신들이 받들고 있는 신이 내려서 상대방의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족집게로 찍어내는 기이한 신내림 지식과 성령의 은사인 지식의 말씀과 구분하지 못하는 얼토당토 않는 주장이다. ...

니키는 ‘성경 어디에도 동성애 경향이나 동성애적인 느낌, 동성애의 유혹을 책망한 구절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신 것이지만 죄는 없으니라는 히브리서 4:15절을 인용하면서 예수님도 마음으로 그와 같은 경향 가진 존재였지만 실제로는 죄를 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이것은 예수님께서도 성적 유혹을 받으셨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태복음5:28절에서 예수님께서 간음의 행위만 정죄한 것이 아니라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것 그 자체도 간음죄로 간주하신 말씀의 왜곡이라 볼 수 있다. 로마서 1장에서나 고린도전서6장 및 구약의 레위기18:22,20:13 등에서 분명 동성애는 죄악 된 행위라고 규정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동성애가 죄라고 말하면 된다. 그것을 굳이 생각 자체는 죄가 아니고 구체적인 행위만 죄라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알파 코스의 성경관은 ...개혁주의 성경관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

니키의 이같은 사상 때문에 왜 인간이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절박성을 크게 부각시키는 인간의 곤궁한 상태, 비참함 및 부패와 타락에 대한 강조점이 거의 없는 것이다. 알파에 있어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유쾌하고 행복한 삶의 방식으로의 변화이다. 알파 코스의 회심은 사실 그리스도께 향한 회심이라기 보다 크리스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회심을 뜻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삶을 풍성하게 사는 방법이라고만 말한다.

이 말은 풍성하게 사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그 중에 기독교가 가장 풍성하게 살게 하는 방법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기독교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인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야 말로 인간의 죄악된 상태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와 동시에 죄와 허물로 죽은 인생들에 대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은혜를 깊이 깨닫게 하는 복음이 핵심이다. 이것이 없이는 인간의 구원은 불가능 한 것이다. ...가톨릭 신학은 이단사상이다. 이단들이 듣고 선호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면 개혁파 교회들이 선호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단지 교회성장이라는 피상적인 수치 때문에 수용하고 있다면 개혁파 교회의 특질을 사라지게 하고 오순절 주의로 모든 교리적 장벽을 허물고자 하는 보편적인 교회관을 따라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신학이 뭐 중요하냐?’‘신학이 밥 먹여 주냐?’‘많이 모이면 되었지!’하는 생각이 있는 목회자들에게 묻고 싶다.

하나님의 종인가? 아니면 사람의 종인가?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고 선배들이 목숨 걸고 지켜온 개혁주의 신학의 근간을 뒤 흔들어도 아무런 번민도 고통도 없는 목회자들을 보며 애통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을 수없이 왜곡시키고 있는 그들의 가르침에 속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3:13-17), 혹 <목회성공>이라는 미끼에 속임을 당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사기꾼이 누가 보아도 거짓임을 파악할 수 있도록 사기치는 법은 없다. 일확천금을 따고자 하는 것 때문에 투자하는 자들이 있듯이 많이 모인다는 것 때문에 뛰어 들어 한 몫 잡겠다는 목회자들이 그들의 사업에 공헌하고 있는 것이다. 알파코스는 그 자체가 거대한 사업체가 되었다.

스티븐 헌트가 지적한 대로 복음을 맥도날드화한 것이다.

알파의 서적들과 교육용 비디오와 카세트, 포스터, 티셔츠, 카 스티커 및 찬양집 등으로 올리는 판매 수입금이 엄청나다. 그들의 전략지침들은 마치 다단계 업체가 운영하는 교육과정과 유사하다. 다만 그들과 차이는 인격적인 성령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빌러 자신들의 사람들을 만들어가는 것이 다를 뿐이다.

알파코스가 교파와 신학적인 장벽들을 쉽게 넘나든다는 것은 진리가 타협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로마 가톨릭과 앵글로 가톨릭과의 어떤 장벽이 없다는 것은 종교개혁의 정신을 무시하는 것이요 가톨릭적인 보편적 교회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장벽 허뭄을 은사주의에서 찾고 있다. 교리의 실제적인 결과는 겉치장에 불과할 분 알파코스의 은사적인 내용들이 다양한 교파들을 하나로 묶고 있는 공통적인 끈인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앵글리칸과 로마 가톨릭의 통합추진위원회가 오래전부터 가동되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는 지금 가톨릭에서 알파코스를 자신들의 교리적인 가르침과 전혀 위배되는 것이 없는 것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니키 검블의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신조로 삼는다고 고백하는 자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가톨릭을 이단이라 본다, 그렇다면 이단교회가 전혀 자신들의 신학적 입장과 배치되지 않는 것으로 인정한 알파코스를 이단성이 없다고만 항변하겠는가?

결론적으로 ...구약성경 출애굽기 32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그에게 제사를 드렸으나 그들이 섬긴 신은 금송아지 형상으로 된 하나님이었다. 자신들이 만든 하나님 앞에서 즐겁게 먹고 마시고 춤추며 뛰 놀았다. 그것이 알파코스를 선호하는 자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 된다.

그렇게 때문에 크리스 핸드의 다음의 글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알파의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며 알파에서 인간의 곤경은 성경에 발견되는 것처럼 심각한 것이 아니며, 알파의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다”.

기독교이단사이비연구대책협회
상임회장 원문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