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M은 왜 위험한가?
출처:바른믿음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234
CCM을 부르지 마라는 것은 현대예배의 뇌관(雷管)을 빼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현대예배의 핵심이 CCM에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필자가 말하는 CCM은 존 윔버(John Richard Wimber, 1934-1997)를 원조로 하는 잘못된 방향성과 목적을 가진 비성경적인 현대적 CCM을 말한다. 오늘날의 예배에서 CCM이 빠진 예배는 그야말로 허탈하다. 소위 개혁주의 교회라 하면서도 아무런 여과 없이 CCM을 부르면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 가는 것은 개혁교회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물론 교회마다 사정이 있어서 한꺼번에 변화를 추구하기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개혁주의 교회라고 간판을 걸어놓고도 CCM을 부르면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 가는 것은 그 강단에서 아무리 개혁주의를 부르짖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자증하는 것이다. 왜 CCM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필자는 그들의 활동 이면에 있는 그들의 근본적인 사상을 몇 가지로 말하고자 한다. 많은 분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설령 CCM이 잘못된 방향성과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렇게 부르고 있을지라도 우리가 좋은 방향과 목적으로 부르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런 말은 매우 위험하다. 음악이 이미 하나의 체계가 있고 경향성을 가지고 있으면 그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만일, 우리가 뉴에이지 음악을 듣게 되면 누가 뉴에이지 음악이라고 굳이 말해주지 않을지라도 음악이 무엇인가 틀리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음악이나 미술이 하나의 운동으로 나타났다고 하는 것은 그 당대의 멘탈리티가 완전히 집약되어서 드러난 종합적인 성향이기 때문에, ‘우리 식으로 부른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런 순진한 생각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속삭이는 것은 분명히 미혹이다. 분별력을 상실한 사람들은 전체적 성향과 근본적인 사상을 생각하지 않고 인간의 감정에 충실할 뿐이다. 그렇게 감정에 충실하면 도약이 일어난다. CCM의 위험성을 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존 윔버를 말해야 한다. 존 윔버를 말하면 사람들은 빈야드 운동을 생각한다. 그러나 존 윔버를 더 알기 위해서는 그의 사상과 활동을 지배하고 있는 핵심사상을 알아야 한다. 그는 무엇보다 퀘이커교도였다. 퀘이커교는 ‘내면의 빛’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내면의 빛’이 있다는 것은 영지주의자들과 같이 인간의 내면에 신성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퀘이커의 ‘신성한 내면아이’다. 퀘이커의 주요 교리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내면의 빛'이란 각 사람의 마음에 신성, 곧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 내면의 빛이 있기 때문에, 즉 자기 속에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하고 믿기 때문에 그 원래의 신성, 그 원래의 하나님과의 교감 혹은 교통을 시도하는 것이 관상기도이고, 이때 음악이 많이 동원된다. 그러한 관상과 음악이 현대적으로 나타난 것이 CCM이다. 이것은 곧 신론이 다르고 인간론이 틀리다는 뜻이다. 인간의 내면에 신성이 있다는 신플라톤주의적 사고방식은 성경이 말하는 인간론과 완전히 반대된다. ‘성경대로 믿느냐? 아니냐?’는 ‘인간의 내면에 신성이 있다고 하느냐? 없다고 하느냐?’의 문제이다. 성경은 인간의 내면에 신성이란 없으며, 인간은 아무 소망이 없는 타락한 죄인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는 사도 요한이 그런 내용을 믿는 영지주의자들을 향해 적그리스도라고 말한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문제는 무엇인가? 인간의 내면에 신성이 있다고 믿으면, 그 신성을 더 밝혀주고 완성시켜 줄 영적인 안내자(spirit guide)가 필요하다. 영적인 안내자와의 만남은 곧 접신(接神)이다. 접신이라는 것은 어떤 영에게 사로잡히는 것을 말한다. 그 영은 귀신이다. 영적인 안내자와 만난다는 것은 귀신에게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인간은 죄인이고, 죄인은 죄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9-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인이기 때문에 그 죄에서 구원할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셨다. 기독교는 죄에서 구원하시는 메시아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나, 퀘이커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그 신성을 더 확장시켜줄 영적인 안내자를 원할 뿐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CCM을 부르면서 예수를 말하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틀리다는 것이다. 예수가 와서 자기 속에 있는 신성을 충만하게 해달라고 부르는 것이 CCM의 본질이다. 왜 하필 예수인가? 그들은 예수를 영적인 안내자 중에서도 최고의 승천대사(Great Master)로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CCM을 부르면 안 된다! 이렇게 말하면, ‘누가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반박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며 부른다! CCM의 본질을 모르고 부르고 은혜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근본적인 본질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 영적인 안내자라는 말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 영적인 안내자를 만난다는 것이 접신이라는 것도 모른다. 그만큼 멘탈리티(mentality)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적인 안내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수가 영적인 안내자 중에서도 최고의 승천대사(Great Master)로 여기고 있는 것을 모르면서도, ‘우리는 은혜만 받으면 됩니다.’라고 큰소리치는 것은 정말 위험한 발상이다. 왜 그들은 영적인 안내자 예수를 필요로 하는가? 그들은 존재론적인 신성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2) 그것은 존재론적 신인합일이다. 그런 방향으로 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이 필요 없는 세상 종교의 공통점이다. 그런 방향성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이 가는 길로 갈 필요가 없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부를 이유가 없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이미 CCM에 젖어 있고 CCM을 안 부르면 예배가 의미가 없다. 이제는 개혁신학으로 무장된 참된 음악가들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한 음악가들을 배출해야 한다.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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